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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내려준 신비의 약수

    광양
    고로쇠마을

    흥겨운 풍물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우리마을

    01. 선동마을

    선동마을

    ■ 역사

    선동마을은 이조 말엽에 전주이씨와 인천서씨 두 가문에서 통정이라는 벼슬과 진사라는 벼슬을 가진 사람이 처음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 근처에 선인무수혈의 명당이 있어서 이곳에 연유하여 마을 이름을 선동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자생조식으로는 밤나무산주들간에 관리기금 조성을 위하여 율림계(1971년, 11명)가 있으며 부락민들 간에 상부상조를위하여 조직된 위친계(1986년, 18명)가 있고 부녀들의 목돈마련을 위한 쌀계(1981년, 16명)가 조직 운영되고 있다.


    ■ 지명유래

    · 도성암 : 선동 뒤에 있는 골짜기.
    · 동암터 : 송천사터 동쪽에 있는 터.
    · 몬당 : 선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배바구 : 농바구 위에 있는 바위로 배처럼 생겼음.
    · 법당(法堂)터 : 동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상백운암이 있었다.
    · 상적둠벙 : 백운산 남쪽에 있는 둠벙. 이곳에 은어를 길러 나라에진상 하였으므로, 이를 지키기 위하여 상직(上直)군이 있었음.
    · 서잿거리 : 선동 앞에 있는 들로 서재(글방)가 있었음.
    · 선동(仙洞) : 동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근처에 선인무수혈(仙人憮袖穴)의 명당이 있었다고 한다.
    · 선동앞 : 선동 앞에 있는 들. 선집골 : 큰선바구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설통박골 : 백련암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근처에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밑에서 승려들이 도망벌을 받았음.
    · 외다릿골 : 파산밭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외나무 다리가 있었다.
    · 용문동(龍門洞) : 백운사와 학사대 사이에 있는 마을.
    · 용문동2 : 학사대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용문폭포와 용소가 있다.
    · 용성굴 : 병암 뒤에 있는 굴. 1894년 동학혁명때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 용소(龍沼) : 용문폭포 밑에 있는 소로 용이 빠져 나갔다 하는 전설이 있는데, 이곳은 매우 영험한 곳으로 이곳에 기우제소가 있었다.




    02. 묵방마을

    묵방마을

    ■ 역사

    묵방마을은 1775년 쯤 밀양박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은 이조중엽에 글쓰는 선비들이 먹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묵방이라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높은 산에 둘러 싸여 있어 한낮에도 먹칠을 한것처럼 컴컴한 고을이라 하여 묵방이라고 했었다.


    ■ 지명유래

    · 대래비소 : 용소 위에 있는 소(召).
    · 먹방 : 심원 동남쪽에 있는 마을,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한 낮에 도 먹칠을 한 것처럼 컴컴하다.
    · 열마지기들 : 먹맹이 위쪽에 있는 들. 용소(龍沼) : 용문폭포 밑에 있는 소로 용이 빠져 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매우 영험한 곳으로 여기고 기우제소가 있다.
    · 용소거리 : 용소 근처에 있는 골짜기.
    · 장군바구 : 먹맹이 앞에 있는 바위로 그밑에 장군이 쓰던 칼, 투구들을 감추었다고 한다.




    03. 심원마을

    심원마을

    ■ 역사

    심원마을은 1776년쯤에 김해허씨와 현풍곽씨가 처음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 마을은 광양에서 전남 구례로 가는 교통의 요지며 이조중엽 고을 원님이 구례로 가기위해 이곳 삼선유곡으로 넘어가다 쉬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심원(深院)이라 하였다. 산세가 수려하며 마을 앞으로 백운산 맑은 물이 흐르며, 기후가 온화하고 경치가 좋은 마을이다.


    ■ 지명유래

    · 가장판 : 심원 서쪽에 있는 능선, 이곳에서 가매장을 했었다.
    · 금목골 : 가장판 남쪽에 있는 골짜기, 높은산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한낮에도 컴컴하다.
    · 몰궁거리 : 먹방과 심원사이에 있는산, 가파라서 지나는 말이 뒹굴었다 한다.
    · 심원(深院) : 논실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인가가 드문 곳이나 이곳 요로(要路)에 집을 지어놓고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원이 있었음.
    · 심원들 : 심원 앞에 있는 들.
    · 칭계암골 : 심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한적골 : 칭계암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04. 진들마을

    진들마을

    ■ 역사

    진틀마을은 1775년경 처음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며 병암과 동골사이에 있는 마을 로 자연 마을인 진틀은 니평(泥坪)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앞에 있는 논들이 옛날에는 진들(구렁논)이라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행정구역상 동곡리(법정리)에 속하고 행정리상 답곡이라하며 답곡(논실) 진틀(병암 마을 포함) 2개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지명유래

    · 구서방 내골 : 진틀 마을 입구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곳에 구씨가 살았는데 호 랑이가 구씨를 물고 골짜기로 사라졌다하여 붙여진 골짜기 이름이다
    · 머구밭골 : 진틀 마을뒤 밭이있는 골짜기로 이밭에 머구대가 자랐음 사다리
    · 박골 : 진틀 마을앞 건너 우측에 있는 골짜기로 골짜기가 사다리같이 층 층계단 모양으로 생겨 붙여진 이름
    · 사답 : 진틀 마을앞 계곡변에 송천사 절에 딸린 논 진틀-앞 : 진틀 마을 앞에 있는 들




    05. 논실마을

    논실마을

    ■ 역사

    답곡마을은(동전마을 포함) 1775년쯤 전주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또한 일설에는 현풍곽씨와 김해김씨가 제일 먼저 입촌하였다고도 전한다. 이 마을에는 논이 많은 계곡이라 하여 답곡(沓谷)이라 이름하였으며 논실이라고도 부른다. 이 논은 주로 송천사의 사원전(寺院田)이었다. 답곡마을은 광양에서 구례로 가는 주요 교통로가 되었던 곳이어서 한재 -구례간전-화개로 이어지는 길과 한재-대신-청감재를 넘는 길이 있었으며 이 길은 황패되었지만 지금도 흔적이 현존한다. 이고장은 맑은 물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고 적은 폭포수가 있어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온다.


    ■ 지명유래

    · 노리목 : 방어 가락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 논실앞 : 논실앞에 있는 돌.
    · 대치 : 논실 남쪽에 있는 마을로 병풍바구의 밑이 된다.
    · 병암 : 논실 남쪽에 있는 마을로 병풍바구의 밑이 된다.